[2024-2025 송구영신 예배]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라(창세기 35:1-7)

[2024-2025 송구영신 예배]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라
창세기 35:1-7

2024년 12월 31일

○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라 / 창세기 35:1-7

1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2 야곱이 이에 자기 집안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3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4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들과 자기 귀에 있는 귀고리들을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고
5 그들이 떠났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셨으므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6 야곱과 그와 함께 한 모든 사람이 가나안 땅 루스 곧 벧엘에 이르고
7 그가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 곳을 엘벧엘이라 불렀으니 이는 그의 형의 낯을 피할 때에 하나님이 거기서 그에게 나타나셨음이더라

2024년 한해가 어떠셨습니까? 한 해를 잘 살아내고 이곳에 있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한 해를 산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죠. 힘든 일도 있었겠지만, 은혜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어느 노래 가사처럼 지나간 것은 지나 간대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지나간 한해보다 비교할 수 없이 중요한 것은 새로운 해를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새해를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본문 말씀은 야곱의 이야기입니다. 야곱은 밧단아람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는 중이었습니다. 형의 분노를 피해 잠깐 외삼촌의 집으로 갔다가 돌아올 예정이었지만, 20년이나 지난 뒤의 일이었습니다. 형 에서가 4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데리로 자신에게로 온다는 소식을 듣고 야곱은 죽음의 위기를 직감했습니다. 절체절명의 순간, 그는 얍복강 가에서 하나님과 씨름하고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형과 극적으로 화해해요.

야곱은 형과 헤어진 이후에 가나안 땅으로 가지 않고 숙곳이라는 곳으로 갑니다. 거기서 자기를 위하여 살 집을 짓고, 가축을 위해 우릿간을 짓습니다. 형과도 화해하고, 가족들과 가축들을 생명도 다 구하고, 야곱은 이제 모든 일이 잘 풀리리라고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의 삶은 다시 한번 위기를 맞습니다.

야곱의 딸 디나가 하몰의 아들 세겜에게 강간을 당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가요? 그러나 고통스러운 일은 거기서 그치지 않아요. 야곱의 아들들이 결혼을 구실로 하몰과 그의 아들 세겜, 그리고 그 성의 남자들에게 할례를 받게 하여 복수극을 펼칩니다. 그때 야곱은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이 모여 자신과 가족들을 죽일까 봐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어디로 가야 하나?’ 야곱이 불안과 두려움에 쌓여 있을 때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1절).

하나님의 명령은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일어나라 / 벧엘로 올아가라 / 거기 거주하며 하나님께 제단을 쌓으라.

일어나라는 이중적인 의미가 있는데, 먼저는 숙곳이라는 지역에서 떠나라는 것입니다. 야곱이 집을 짓고 살아고자 했던 그 땅은 하나님께 약속하신 땅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의 의미는 낙심과 두려움의 자리에서 일어나라는 것입니다. 야곱은 지금 디나와 아들들이 한 일로 인하여 낙심과 불안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낙심과 불안, 두려움은 사람을 주저앉혀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 자리에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라는 것입니다. 낙심하고 두려움의 자리에 머물러 있으면 내년의 삶은 보나 마나 실패에요. 약속의 땅을 목전에 둔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께서 “강하고 담대하라고 하신 이유가 거기 있는 것입니다.

벧엘로 올라가라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벧엘은 야곱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장소였습니다. 복을 받기 위하여 형도 속이고, 아버지도 속이죠. 분노한 형의 낯을 피하여 밧단아람으로 떠날 때 루스라는 곳에서 꿈을 꾸게 됩니다. 사닥다리가 하늘로부터 연결되어 있고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는데, 그 위에서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창 28:13-15).

야곱에게 벧엘은 하나님을 만난 장소였고, 자신이 어디로 가든지 하나님께서 언제나 함께 해주시고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하실 것이라는 약속을 받은 장소였습니다. 이와 같은 약속을 받고 아침에 일어나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그리고 야곱도 하나님께 서원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이 가는 길을 지켜주시고 아버지의 집으로 평안히 돌아가게 하신다면 다시 이곳으로 올라와 제단을 쌓겠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곳의 이름을 벧엘, 하나님의 집이라고 불렀습니다. 여기 계신 하나님을 만났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야곱의 상황을 보면 벧엘에서 멀어져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만나주셨고 그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가 어디로 가든지 함께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이후로 야곱은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살지 못합니다. 이전처럼 복을 쟁취하려고 몸부림칩니다. 자신의 힘과 지혜를 총동원하여 어떻게든 잘살아보려고 애를 써요. 속이고 속고... 그의 삶은 늘 빈손이었습니다. 그러나 20년이 지나 밧단아람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올 때는 가족들도 많아지고 가축들도 제법 많아졌습니다. 이번에는 자신이 하나님께 약속한 것을 잊어버립니다. 아버지의 집으로 평안히 돌아가게 하신다면 벧엘로 올라와 제단을 쌓겠다고 한 약속을 잊고, 숙곳으로 가서 자신을 위하여 집을 짓고 가축들을 위하여 우릿간을 지은 것입니다. 그곳에서 안정된 삶을 살아 보리라 생각했지만, 딸이 강단을 당하는 사건이 일어나고, 멸족에 대한 두려움이 그의 삶을 덮쳐왔던 것입니다. 잘살아보고자 무던히 애썼지만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어디로 가야 하나?’ 삶은 여전히 광야였던 겁니다.

행복하게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안정되고 평화로운 삶을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왜 우리의 삶은 이렇게 혼란스러운가요? 왜 불안과 두려움이 떠나가지 않는 것입니까? 열심히 살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닙니다. 지난 한 해 잘살아보려고 몸부림치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우리의 삶이 광야와 같은 것은 벧엘에서 멀어졌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살았지만, 마음에 안식과 평화가 없습니다. 새해가 온다고 하는데 기대감보다는 불안함과 막막함이 앞섭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이때 주님께서 들려주시는 말씀이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라”는 것입니다.

벧엘로 올라가라는 것은 무슨 뜻인가요? 하나님이 계신 자리, 그분의 은혜와 약속이 있는 자리로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야곱에게 주신 약속이죠.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주신 약속입니다. 이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짝은 우리의 믿음입니다. 자기 계획과 노력에서 일어나 약속을 믿는 믿음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한해를 돌아보며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라고 고백해요. 정말 그렇게 믿습니까? 잘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순간에 필요한 믿음이 있어요. “하나님께서 2025년도 은혜로 붙들어주실 것이다. 내가 어디 있든지, 어디로 가든지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실 것이다. 잘 살아내게 하실 것이다.” 이 믿음에 임하는 것이 평안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 중심의 삶으로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야곱이 숙곳에서 집을 짓고, 가축 우릿간을 지을 때 “자기를 위하여” 지었다고 했습니다. 벧엘에서의 하나님을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삶의 중심이 자기 자신에게 있었다는 뜻입니다.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라. 거기 거주하며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나 중심의 삶에서 벗어나 하나님 중심, 예배 중심의 삶을 살라는 뜻인 겁니다.

예배는 단순히 모여서 찬송을 부르고 기도를 하고 말씀을 듣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것이고, 내 삶의 중심이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내 뜻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다는 고백이며, 내 힘과 지혜, 내 노력으로 살지 않고 함께 하시고 돌보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겠다는 고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믿음으로 예배를 드리셨나요? 하나님 중심의 삶, 그분을 합당하게 예배하는 삶에 임하는 것이 질서요, 평안입니다.

2절 말씀을 보면 야곱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벧엘로 올라가기 전에 한 일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야곱이 이에 자기 집안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2절).

야곱이 자기와 함께 한 사람들에게 요구한 것이 무엇인가요? 이방 신상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우상을 가지고 하나님께 제단을 쌓으러 올라갈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지금 상황을 보면 집안 사람들이 많은 우상을 가지고 있었어요. 야곱이 사랑하는 아내 라헬도 집을 떠날 때 드라빔을 훔쳐 가지고 왔습니다. 아버지 라반이 쫓아와 이것을 찾았지만, 안장에 깔고 앉아 끝까지 숨기고 내놓지 않았습니다. 야곱도 이것을 그대로 두고 있었던 것이고요. 그러나 벧엘로 올라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결단한 것입니다. “이방 신상을 버리고 자기를 정결하게 하라.” 4절 말씀에 보면 사람들이 그들의 손에 있는 신상들과 귀고리들을 야곱에게 주고, 야곱은 그것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 묻고 떠났습니다.

여러분이 아직도 가지고 있는 신상들은 무엇인가요? 마음의 안장 속에 숨겨 놓은 드라빔은 무엇입니까? 자아라는 우상, 세상 사랑이라는 우상, 탐욕이라는 우상, 성공이라는 우상, 축복이라는 우상. 벧엘로 올라가고자 한다면 우상들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로 살고자 한다면 우상들을 버려야 해요. 야고보는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약 4:8)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최고로 사랑하고, 그분만 섬기겠다고 결단하시기를 바랍니다. 두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염려고 두려움이라면, 일편단심의 정결한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감사와 평강입니다.

두 번째는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고 했습니다. 의복을 바꾸어 입는 것도 정결함과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는 결혼식장에 갈 때 평소와는 다른 옷을 입고 갑니다. 귀한 사람을 만나러 갈 때도 마찬가지죠. 우리가 만나는 그 사람이나 참여하는 예식을 존중한다는 것을 옷을 달리 임음으로써 표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야곱은 벧엘로 올라가기 전에 하나님을 예배자하는 자로서 합당한 옷으로 바꾸어 입으라고 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옷을 입어야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 그 어떤 옷도 적합하지 않아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 입혀주시는 의의 옷을 입은 자만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의의 옷을 입으셨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로서 정결하게, 거룩하게 살 결단도 있으신가요?

사도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에게 “옛 사람을 버리고 .... 새 사람을 입으라”(엡 4:22-23)라고 했습니다.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는 것보다 더 강력한 표현이지요. 이것은 스스로 새 사람이 되라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의와 진로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이 되었으니 새로운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와 부활로 의의 옷을 입혀주신 사람답게 살라는 겁니다.

조금 있으면 새해가 시작됩니다. 새것이 주는 신선함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새해가 되면 마음이 좀 들뜨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새 학년, 새 학교, 새 직장, 새 옷, 새 차, 새 집이 주는 신선함이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새롭게 되어야 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고, 우리의 삶입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새해가 와도 마음이 묵어 있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새것을 주렁주렁 걸치고 그 가운데 산다고 해도 옛 사람처럼 산다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라.” 혼란과 낙심과 두려움의 자리에서 일어나십오. 하나님의 은혜와 약속을 신뢰하는 믿음의 자리로 올라가시기를 바랍니다.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로 올라가시기를 바랍니다. 이 세대를 본받는 자리에서 떠나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리로, 주의 뜻을 행하는 자리로 올라가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은혜와 평강으로 함께 해주실 것입니다.

이제 성찬을 받겠습니다.

[합심 기도]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2025년, 하나님의 은혜와 약속을 믿는 믿음으로 살게 하여 주십시오. 거룩한 예배자로 살게 하여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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