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임하시오며(마태복음 6:9-13)
나라가 임하시오며 마태복음 6:9-13
마태복음 6:9-13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10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11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이 기도에 관해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기도는 인간의 영혼이 다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차원의 활동이다. 그러므로 기도는 인간의 영적인 상태를 테스트하는 궁극적인 시험이기도 하다. 기도생활만큼 크리스천들의 영적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은 없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사람들과의 이런저런 일상들로 가득한 세계를 떠나 하나님 앞에 홀로 있을 때 우리의 진정한 영적 현주소를 알게 된다.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의 영적인 상태는 어떠신가요?
기도에 관한 말 중에 기도의 수준이 삶의 수준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말에 동의하십니까? 실제로 영적으로 높은 수준의 사람들은 다 깊은 기도의 사람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기도를 통해 계획하신 일은 높고 위대합니다. 그런데도 왜 우리의 영적 수준은 낮은 단계에 머물러 있는 것일까요? 우리의 기도의 수준이 낮고 좁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는 수준이 높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는 우리의 시선을 지상에서 하늘로 끌어올립니다. 나를 넘어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데 관심을 두도록 만듭니다. 여기에 초점을 맞추고 계속 기도를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삶의 차원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거죠.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는 높은 곳을 바라보게 할 뿐만 아니라 넓은 곳을 바라보게 합니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다음에 나오는 기도가 “나라가 임하시오며”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의 나라가 얼마나 크고 광대하겠습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 모든 나라들을 뛰어넘는 나라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기도할 때 우물 안 개구리처럼 기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신과 가정 그리고 교회, 이정도 범위를 뛰어넘지를 못해요. 그러니 기도는 하지만 삶의 수준이 넓어지지를 못하는 거죠.
지난주에 기도에도 우선순위가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기도가 먼저라는 겁니다. 마태복음 6장 끝부분에서는 아주 명확하게 이 우선순위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마 6:33). 하나님과 그분의 나라가 기도의 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신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 어떤 것보다 우선하여 구해야 할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곳일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장소적인 개념으로 생각합니다. 저 하늘 어딘가에 있는 아름다운 나라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장소적인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왕으로 통치하시는 나라를 말하는 겁니다.
신약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나라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는 단어가 있는데 바로 천국이라는 단어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나라와 천국이 좀 다른 느낌이 있지만 사실 같은 말입니다. 언어적인 관습이나 글을 읽은 사람들을 고려해서 어떤 경우는 하나님의 나라라는 단어를 쓰고 어떤 경우에는 천국이라는 단어를 썼을 뿐입니다. 마태복음 19:23-24 말씀을 보면 이 두 단어가 한꺼번에 사용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한 문장 안에서 앞에서는 천국이라는 단어를 썼고 뒤에서는 하나님의 나라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두 단어가 같은 의미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거죠.
많은 사람들이 천국을 믿는 자들이 죽어서 가게 되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해서 믿는 자들이 죽은 후에 가게 되는 곳은 천국이 아니라 낙원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회개한 한 편 강도를 향해 네가 오늘 나와 함께 천국에 있으리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낙원에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천국 혹은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특정한 장소를 말하거나 죽은 후에 가게 될 곳을 말하게는 게 아닙니다. 그런 의미가 포함되어 있지만 그것보다 훨씬 개념이 큽니다. 다시 말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께서 왕으로 통치하시는 나라를 말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나라가 임하도록 기도하라.” 우리는 이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와 다른 나라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사탄이 통치하는 나라입니다.
요한일서 5:19 말씀을 보면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을 제외하고 온 세상이 악한 자에게 속해 악한 자의 통치를 받고 있다는 뜻이 되는 겁니다.
세상이 왜 이렇게 악한가? 세상에 왜 이렇게 고통과 불행이 가득한가? 세상에 왜 이렇게 전쟁과 기근이 끊이지 않는가? 여러분도 그런 생각 해보셨을 겁니다. 과학과 문명이 발달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악한 자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다르게 말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아직 임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들인 겁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아직 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그 나라가 임하도록 기도하라고 가르치신 거죠.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 가운데 이미 임했습니다. 다만, 아직 ‘완전히’ 임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전하신 복음의 핵심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예요.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을 찾아보세요. 온통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말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단순히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가르치시러 오신 게 아닙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나라를 가져오신 분이셨습니다.
좀 전에 온 세상이 악한 자에게 처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복음은 무엇인가? 그 악한 자의 권세를 깨뜨리고 하나님의 통치를 회복하실 분이 오셨다는 겁니다. 요한일서에 보면 하나님의 아들이 오신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요일 3:8).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사역하실 때 귀신을 내어 쫓으시고 각색 병든 자들을 고쳐주셨음을 봅니다. 악한 영과 고통과 질병에 짓눌려 있던 사람들이 예수님에 의해 온전케 되었다는 거죠. 어떤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저가 바알세불, 귀신의 왕을 힘입어서 저런 일을 행한다고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마 12:28).
예수님께서 마귀의 일을 멸하시기 위하여 결정적으로 감당하신 일이 있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인간적으로 보기에 십자가는 실패처럼 보이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실패처럼 보이는 사건을 통해서 마귀의 권세를 꺾으신 겁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임하였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 가운데 계속 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주라 그리스도라 시인하는 곳에 계속하여 임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 그것이 이 땅에 임한 하나님의 나라인 겁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는 어느 시점에 이 땅 가운데 완전히 임하게 될 겁니다. 그 때가 언제죠? 요한계시록 끝 부분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2).
여러분은 이 말씀이 이루어질 것을 믿으십니까? 예수님께서 영원한 왕으로 다시 오실 것을 믿으십니까? 그가 다시 오심으로 모든 죄와 고통이 사라지고 사라질 때가 올 것을 믿으십니까? “나라가 임하시오며”라고 기도하라는 것은 바로 그 때를 내다보고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기도를 선교완성을 위한 기도라고도 부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온 세상에 전해지고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온 세상에 충만해 질 때,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임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완전히 임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중간에 우리의 기도를 사용하시겠다는 겁니다. 우리 중에 “뭘 기도해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드는 분들이 있으실 겁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면 온통 다 기도할 제목들입니다. [주간기도제목]
우리가 이 시점에서 점검해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나 자신에게 실제인가 하는 거예요.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가르쳤습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우리가 이것을 모르는 바가 아니죠. 그런데 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품어지지 않는 것인가요? 기도를 해도 자신과 왜 가정이라는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는가 말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내 안에서 실제가 되지 못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큽니다.
사실 하나님의 나라를 마음으로 품고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은 한 종류의 사람 밖에는 없어요. 하나님의 나라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어떤 개념이나 지식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란 예수님을 살아 계신 인격체로 받아들이는 겁니다. 그분을 인격체로 받아들이되 삶의 주인으로 받아들이는 겁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아주 혁명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어요. 삶의 통치자가 바뀌는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실 때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고 말씀하셨습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복음을 믿기 전에 있어야 할 것이 회개라는 뜻입니다. 회개란 단순히 “제가 이런 죄를 지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이런 고백을 말하는 게 아니라 죄에서 돌이키겠다는 결단입니다. 그런데 죄가 뭐죠? 내 마음대로 싶어 하는 욕망, 그게 바로 죄의 실체입니다. 그러니 회개라는 것은 내 마음대로 살지 않겠다는 결단인 거죠.
데이비 팀스라는 사람은 “당신의 나라가 오게 해주십시오”라는 기도를 뒤집으면 “내 나라가 끝나게 하옵소서”라는 기도가 된다고 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은 여러분의 나라가 끝나도 좋은가요? 이제 여러분이 원하는 삶이 끝나도 좋으신가요? 안타깝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고민이 없이 예수를 믿는 것 같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 14:7).
우리가 이 험한 세상에서 의와 평강과 기쁨을 누리며 살 수 있을까?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면 그렇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에게는 이것이 실제가 되지 않는 것인가요? 평강과 기쁨은 원하지만 그것을 주시는 예수님을 주인으로 삼고 살기는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찬양 중에 이런 가사를 가진 찬양이 있습니다.
내가 주인 삼은 모든 것 내려놓고
내 주 되신 주 앞에 나가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 내려놓고
주님만 사랑해
주 사랑 거친 풍랑에도
깊은 바다처럼 나를 잠잠케 해
주 사랑 내 영혼의 반석
그 사랑 위에 서리
인생의 거친 풍랑 앞에서도 깊은 바다처럼 평안을 누리는 삶. 저는 저와 여러분이 이 찬양의 주인공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누가 이 찬양의 주인공이 될 수 있겠습니까? “내가 주인 삼은 모든 것 내려놓고 내 주 되신 주 앞에 나가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 내려놓고 주님만 사랑해!” 이 고백이 실제가 된 사람들뿐입니다. 예수님께서 왕으로 통치권을 행사하고 계시는 인생들뿐입니다.
지금까지 어떻게 인생을 살아오셨습니까? 내 마음대로 살아지지 않는 게 내 인생입니다. 내가 책임질 수 없는 게 내 인생입니다. 인생이 힘들게 느껴지는 것은 마음대로 살아지지 않는 인생을 억지로 살려하기 때문입니다. 인생이 무겁게 느껴지는 것은 책임 질 수 없는 인생을 책임지려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내 마음대로 사는 내 나라는 끝났다.” 이건 두려운 일이 아니라 복음입니다. “주여, 저를 다스려 주소서! 제 삶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소서!” 이것만큼 놀라운 기도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책임지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인생이 된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대세라는 단어를 아실 겁니다. 사전을 찾아보면 “일이 어찌할 수 없이 되어 가는 결정적 형세”라고 되어 있습니다. 거스를 수 없는 일에 흐름이라는 뜻입니다. 대세를 알면 무엇을 위하여 기도하고, 무엇을 위하여 살아야할지가 분명해집니다. 요즘은 뭐가 대세인가요? 온 우주적인 대세가 있으니 그게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백수십년 전에 조선 땅에 복음을 가지고 들어 온 선교사님 중에 언더우드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이런 기도문을 남겨 놓으셨습니다.
오 주여,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 메마르고 가난한 땅, 나무 한 그루 시원하게 자라오르지 못하고 있는 땅에 저희들을 옮겨와 앉히셨습니다. 그 넓고 넓고 넓은 태평양을 어떻게 건너왔는지 그 사실이 기적입니다.
주께서 붙잡아 뚝 떨어뜨려 놓으신 듯한 이곳,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은 고집스럽게 얼룩진 어둠뿐입니다. 어둠과 가난과 인습에 묶여 있는 조선 사람뿐입니다. 그들은 왜 묶여 있는지도, 고통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고통을 고통인줄 모르는 자에게 고통을 벗겨주겠다고 하면 의심부터 하고 화부터 냅니다.
조선 남자들의 속셈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 나라 조정의 내심도 보이지 않습니다. 가마를 타고 다니는 여자들을 영영 볼 기회가 없으면 어찌하나 합니다. 조선의 마음이 보이질 않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해야 할 일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 순종하겠습니다. 겸손하게 순종할 때 주께서 일을 시작하시고, 그 하시는 일을 우리들의 영적인 눈이 볼 수 있는 날이 있을 줄 믿나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이니..”라고 하신 말씀을 따라 조선의 믿음의 앞날을 볼 수 있게 될 것을 믿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서양귀신, 양귀자라고 손가락질을 받고 있사오나 저희들이 우리 영혼과 하나인 것을 깨닫고 하늘나라의 한 백성, 한 자녀임을 알고 눈물로 기뻐할 날이 있음을 믿나이다. 학교도 없고 그저 경계와 의심과 멸시와 천대만이 가득한 곳이지만 이 곳이 머지않아 은총의 땅이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주여, 오직 제 믿음을 지켜주소서.
백수십년 전만 해도 한국은 그저 동방의 이름 없는 가난한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나라를 위해 20대의 전도유망한 젊은이가 삶을 바칩니다. 위험과 불편함을 감수합니다. 좌절과 절망을 겪으면서도 순종을 포기하지 않아요. 서양귀신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복음을 전하기를, 사람 사랑하기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무엇 때문이었겠습니까? 이 땅에 임할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언더우드 선교사는 수 없이 많은 좌절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입장에서 이 기도문을 보면 어떻습니까? 너무나 감동적이죠. “이곳이 머지않아 은총의 땅이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라는 기도가 이루어진 것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대세입니다. 그 무엇도, 그 어떤 세력도 이 나라가 임하는 것을 좌절 시킬 수 없습니다. 마귀가 아무리 격렬하게 저항을 해도 결국 그 나라는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좋아보여도 세상 나라는 망할 것이고, 내가 아무리 세워보려고 발버둥 쳐도 결국은 내 나라도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결국은 망할 나라를 위하여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요? 사랑하는 여러분, 대세를 따르십시오. 왕의 통치를 받아들이고 그분의 나라를 위하여 살고, 그분의 나라를 위하여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가장 가치 있고 영광스러운 삶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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