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교회를 세우는가?(사도행전 20:18-38)
누가 교회를 세우는가? 사도행전 20:18-38
○ 누가 교회를 세우는가? / 사도행전 20:17-38(봉독 17-32)
17 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니
18 오매 그들에게 말하되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여러분 가운데서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여러분도 아는 바니
19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20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21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
22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23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25 보라 내가 여러분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이제는 여러분이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아노라
26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에게 증언하거니와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
27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여러분에게 전하였음이라
28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29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30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
31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32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사도행전강해 마흔한 번째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주신 사명이 있습니다. 하나는 복음의 증인이 되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교회를 세우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중요한 공동체입니다. 교회가 있어야 우리의 신앙이 유지될 수 있으며, 그 신앙이 다음세대로 전수될 수 있고, 교회가 있어야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복음이 땅끝까지 전파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모였다고 해서 교회가 그냥 세워지는 건 아니에요. ‘어떻게 교회를 든든히 세울 수 있을까?’ 이것이 본문 말씀에 나와 있는 사도 바울의 관심사였습니다.
바울은 에베소를 떠나 예루살렘을 거쳐 로마로 가겠다는 선교 계획을 따라 이동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드로아에서는 유두고린 살린 일이 있었고, 현재는 에베소에서 남쪽으로 50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밀레도라는 항구에 도착해 있었습니다. 배가 떠나려면 어느 정도 기다려야 했던 것 같습니다. 바울은 기다리는 동안 에베소에 사람을 보내어 장로들을 그곳으로 오게 해요. 장로들이 도착하자 바울은 그들에게 말씀을 전합니다.
바울이 불러 모은 장로들은 지금과는 개념이 조금 다릅니다. 바울이 처음에는 장로들을 오게 하라고 했는데 28절 말씀에 보면 그들을 감독자요, 양 떼를 보살피는 목자라고 부르는 것을 봅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불러 모은 장로들은 지금의 목사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왜 예루살렘으로 가는 중에 에베소교회의 목회자들을 불러 모은 것일까? 성령께서 깨닫게 해주신 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선교 여정 중에 결박과 환난이 기다린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셨고, 바울은 주님께서 맡기신 일을 완수하는 데 생명조차 아끼지 않기로 각오한 상태였습니다. 바울은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지금 떠나면 이들의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어요. 그래서 이들을 불러 모아 ‘어떻게 주님께서 맡기신 양 떼를 보살필 것인가?’ ‘어떻게 교회를 든든히 세울 것인가?’ 하는 주제로 말씀을 전하였던 것입니다.
어떻게 양 떼를 보살필 것인가? 첫째는 바울 자신의 본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19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바울은 사도로서 자신이 어떻게 말씀을 가르쳤고 교회를 돌봤는지를 말했습니다. 그는 에베소에 머물러 있을 때 철저하게 복음의 말씀을 가르쳤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 대하여. 낮이나 밤이나 거리낌 없이 하나님의 뜻을 다 가르쳤다는 겁니다. 그러나 바울은 신학을 가르치는 신학자로서 행한 것은 아니었어요. 그는 에베소 성도들을 위하여 눈물을 흘렸고, 기도했고, 그들을 위하여 시험을 참고 견뎌냈다는 것입니다. 목자의 마음으로 목회를 했다는 뜻인 거죠. 에베소의 장로, 목회자들에게 이 본을 따르라고 한 것입니다.
두 번째는 자신을 살피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28절).
장로들은 양 떼를 보살펴야 하는 직임을 맡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영혼을 보살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은 새벽기도 때 자신을 위해서 기도를 많이 한다고 했습니다. 너무 이기적인 것 아닌가? 자신이 바로 서야 목회를 잘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양 떼에게 믿음을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배우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양 떼를 말씀으로 바르게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주님과 교제가 빈약한 사람이 어떻게 양 떼를 주님과의 풍성한 교제로 이끌 수 있겠나요? 그러니 양 떼를 위한다면 자신을 보살펴야 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이단을 경계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29-30절).
바울은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에베소 성도들을 다시 보지 못할 것을 알았습니다. 그 뒤에 에베소교회에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를 예상한 거죠. 이리가 들어와 양 떼를 유린할 것이고, 복음의 진리를 버리고 자신들을 따르게 할 것임을 알았던 겁니다. 그래서 장로들에게 깨어 있어 이들로부터 양 떼를 보호하라고 경계한 것입니다.
교회의 가장 큰 위협은 세상이 아닙니다. 진리를 어그러지게 하는 거짓 선지자들입니다. 초대교회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사나운 이리가 양 떼를 집어삼키려고 하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 목자가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 목자는 ‘삯꾼’이 아니겠습니까?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 보면 소아시아 일곱 교회를 향한 예수님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일곱 교회 중 하나가 에베소교회입니다. 몇몇 교회가 예수님께 심각한 책망을 받은 이유가 거짓 선지자들로부터 교회를 지켜내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의 경고한 대로 목회자들이 깨어 있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인 것입니다.
목회자들은 이와 같은 방식으로 양 떼를 보살피고 교회를 세우는 사명을 받은 사람들이죠. 그뿐 아니라 여기 있는 모두가 교회를 세우라는 사명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본문 말씀을 보면 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필요한 믿음이 있다는 깨닫게 됩니다.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28절).
우리가 교회를 바라볼 때 필요한 믿음이 무엇인가요? 교회는 하나님이 피 값을 주고 사신 하나님의 것이라는 겁니다. 교회를 위하여 감독자요, 목자를 세우신 분도 성령 하나님이시라는 것이고요.
교회가 귀한가요? 그렇습니다. 교회는 너무나 귀한 공동체입니다. 교회가 귀한 것은 돈이 많아서가 아닙니다. 세상에서 귀하고 유력한 사람들이 많아서가 아닙니다. 완전하기 때문에 교회가 귀한 것도 아닙니다. 가난한 교회도 귀하고, 그저 그런 사람들이 모인 교회도 귀합니다. 연약하고 불완전해도 귀해요. 교회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하신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가치입니다.
직분이 귀한가요? 저는 ‘목사가 별건가?’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습니까? 실제로 흔해 빠진 목사가 별건가요? 죄송하지만 장로가 별건가요? 권사나 집사가 별건가요? 세상에서 누가 인정해 줍니까? 그런데 언젠가 ‘목사가 별건가?’ 하는 생각을 주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저를 목사로 삼으시고 교회를 보살피라는 사명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귀하게 여겨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직분의 가치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직분자들을 세우시고 그들에게 일을 맡기시는 분도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여기서 나오는 필연적인 결론이 있는데, 교회는 하나님께서 세우신다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이 이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32절).
바울은 장로들에게 자신을 본받아 철저하게 말씀을 가르치라. 자기를 보살피고 양 떼를 보살피라. 깨어 있어 이리로부터 양 떼를 지켜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들을 통해 교회를 세우시는 분이 주님이신 것을 알았어요. 그래서 그들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한다고 했던 겁니다.
교회를 세우는 일이 단지 사람에게 맡겨진 일이라면 어떻게 우리 자신의 부패로부터, 그리고 진리를 어그러뜨리는 이단의 공격으로부터 교회를 지켜낼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세상이 가하는 박해와 고난을 이겨낼 수 있겠어요? 그러나 교회가 지금까지 지켜져 올 수 있었던 것은 교회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에 기록되고, 요한계시록에 계시된 교회는 승리하는 교회에요. 왜 그런 줄 아세요? 어린 양의 피 위에 교회를 세우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하나님의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이 세우신다.’ 여러분 안에는 이 믿음이 있습니까? 이 믿음이 분명해야 주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의 길을 갈 수 있어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명의 길은 쉽지 않습니다. 목회자들에게 양 떼를 보살피라고 하셨지요. 목자의 마음으로 양 떼를 보살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목자 자신이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보살핌의 대상이 되는 양 떼 때문이기도 해요.
제가 전도사 때 섬겼던 교회는 큰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그때 어떤 생각을 했느냐면 ‘지금 이 교회를 담임하라고 해도 할 수 있겠다.’였습니다. 지금은 그때보다 배운 것도 많고, 목회자로서 경험도 많이 쌓였고 할 수 있어요. 그러나 지금 목회에 대하여 느끼는 감정은 자신이 없다는 겁니다. 목회는 할수록 어렵다는 것입니다. 제가 받은 사명에 비해 저 자신이 너무나 부족하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교회를 양 떼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양 떼라고 불리는 여러분의 느낌은 어떠신가요? 양이라는 비유는 꼭 긍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양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온순하지도 깨끗하지도 않은 동물이기 때문입니다. 양들은 어리석고 고집 세고 더러운 동물이래요. 우리 안에 이런 속성이 다 있고 이런 사람들이 모인 곳이 교회라는 겁니다. 그러니 양 떼를 돌보는 목회가 쉬운 일이 아닐 수밖에 없는 거죠.
그러나 부족함이 많은 목회자들이 포기하지 않고 이 일을 감당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여기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리스도께서 피 값을 주고 사신 귀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피 값으로 사신 자기 사람을 포기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분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교회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승리하는 교회로 세워내실 겁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목회자들에게 양 떼를 돌보라는 일을 맡겨주셨다면 어렵더라도 그 일에 마음을 다해야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인도 선교사인 스탠리 존스. 그는 미국 감리교 감독으로 선출되었으나 하루 만에 사임하고 선교지인 인도로 돌아갔던 분입니다. 그분의 자서전 <순례자의 고백>에서 인도의 현지인들 속에 결점이 보이더라도 그들을 받아들이고 그들과 함께 일할 수 있었던 이유를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모든 결점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영접하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가 늘 붙들었던 성경 구절이 있었대요.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마 12:20).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약한 자들, 비틀거리는 사람들, 죄인들을 다그치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들에게 희망을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그들을 패배가 아닌 승리로, 결점이 아닌 완전함으로 이끄시고, 기어이 그렇게 만드셨습니다.”
자신을 받아주신 하나님의 자비에 대한 감사, 결국은 주님이 세우실 것이라는 믿음이 결점이 많은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함께 사역할 수 있는 동기였다는 것입니다.
양 떼가 목자를 바라볼 때도 똑같은 관점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이 저를 보시기에 얼마나 부족하고 결점이 많아 보이겠습니까? 인간적인 관점으로만 보면 목사의 리더십에 따를 수 없어요. 제가 봐도 여러분이 더 나은 게 많아요. 그럼에도 말씀의 가르침을 받으며 함께 교회를 세워갈 수 있는 것은 주님이 저를 귀히 여기시고, 목사의 일을 맡기셨기 때문인 겁니다.
여러분이 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맡은 사명을 바라보는 관점도 그와 같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자신이 부족하고, 일이 좀 어렵고, 다른 양들이 좀 어렵게 해도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겁니다. ‘이 일은 주님께서 맡기신 일이다. 그 사람은 하나님이 피 값으로 사신 귀한 존재다.’ 이런 믿음이 있어야 힘든 일이 있어도 우리가 포기하지 않고 서로를 사랑하고 함께 교회를 세워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공동체 안에서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과 일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목자되신 주님과 그분의 말씀을 결론으로 삼고 각자에게 맡겨진 일을 신실하게 섬기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하나님이 피 값으로 사신 교회를 세우는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삶의 목적과 비전이 분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는 뜨거운 열정이 있고, 담대함이 있었고, 눈물이 있었고, 사랑이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 아니면 누가 행복한 사람인가요? 여러분은 어디서 행복을 찾으십니까?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사명에 헌신하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피 값으로 사신 교회를 세우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여러분도 행복한 자로 사실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합심 기도]
교회는 하나님의 것이고, 교회는 하나님께서 세우실 것입니다. 그 일에 우리를 부르셨다면 영광스러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주와 그 은혜의 말씀에 복종하게 하여 주십시오. 피 값으로 사신 교회를 세우는 사명자로 살게 하여 주소서.
최신 댓글